
홍섷
작약
by. 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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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주의
경찰,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 국회의원 김민중 불송치.. “증거 불충분”
[김라디 기자] 경찰이 보육원에 있는 10대 소년을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한 사람이나라당 국회의원 김민중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10일 익명으로 고소장이 접수된 사건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불송치했다고 21일 밝혔다.
경찰은 고소인이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간 기간인 2014년, 1년 동안 보육원의 원장실에서 김민중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고소장을 접수했다. 이후 경찰은 김민중을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성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앞서 김민중 측은 성폭행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보육원에 봉사활동을 간 건 좋은 마음으로 간 것이며 그곳의 아이들과 단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만남을 가진 적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불송치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 재수사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syringa_1023@hsmedia.co.kr
작약
“이준섭씨 한 마디만 해주세요. 정말 프로포폴을 투여하신 게 맞으신가요?”
“이준섭씨!! 여기 봐주세요!!”
“이준섭씨!!”
수많은 기자와 카메라를 뚫고 홍중이 피의자를 데리고 경찰서 안으로 겨우 들어왔다. 후배에게 피의자를 맡기고 홍중은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았다. 이놈의 기자들은 사람이 지나갈 길은 만들어줘야지 매너가 없어. 홍중은 불쾌감을 잔뜩 드러낸 채 제 자리에 앉았다. 밖은 기자들로, 안은 제 억울함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인 건 동일했다. 그 사람들을 보며 홍중이 잠시 멍을 때리는데 볼에 차가운 것이 닿아 깜짝 놀라며 정신을 되찾았다.
“뭐야. 언제 왔어?”
“방금. 이거 네 아메리카노.”
“고마워. 마침 딱 필요했어.”
성화가 내민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들며 남들 몰래 성화의 손을 감싸 쥐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성화가 토끼처럼 흠칫했지만 곧 웃으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소문내고 싶어서 그래?”
“이미 다 알더만. 그리고 이참에 내꺼라고 소문 내야지. 이제 나랑 결혼도 할 사이면서.”
“아이고. 노총각은 외로워서 일을 하겠나~”
옆자리인 정우영 경위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하지만 홍중과 성화는 우영의 말에 그저 어깨만 으쓱이고 다시 그들의 이야기에 빠졌다. 한 번 우영의 말을 들어줬다가 한 시간 내내 그의 한탄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녔기 때문이었다. 성화가 준 아메리카노를 쭉 들이키는데 시원함과 동시에 성화의 사랑까지 함께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차가움에 만족하는데 경찰서 입구에서 화를 내며 들어오는 반장에 아까 기자들이 떠올랐다.
“성화야, 기자들 어떻게 뭐 안돼? 들어오는 거 너무 힘들어.”
“어쩔 수 없지. 저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건데. 근데 이준섭이 왜 여기로 왔어? 용산 관할 아니야?”
홍중이 손짓하자 성화가 홍중에게 가까이 귀를 댔다. 무슨 대답이 나올까 기대하며 기다리는데 돌아온 것은 대답 대신 짧은 뽀뽀였다. 성화의 얼굴이 삽시간 안에 빨개졌다.
“야 김홍중..!”
“이 맛에 뽀뽀하지. 반장님이 잡아서 여기로 데려온 거야.”
“대답만 하면 되지 사람들 보게..”
성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고 홍중도 따라 주위를 쳐다봤다. 그리고 정색하며 일 안 해? 하고 한 마디 하자 다들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제 일에 몰두했다.
공식적으로 성화와 사귄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공공연하게 다들 눈치를 챈 듯했다.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는 기자들은 많았지만 그 중 유일하게 홍중이랑 친한 것이 성화란 것을 알면 이미 90%는 다 안 것이니.
“박성화 기자! 회의 들어오지.”
멀리서 성화의 상사가 성화를 부르고 성화가 내려놨던 시럽 다섯 번 추가한 커피를 들고 상사를 따라나섰다. 그의 뒷모습을 보다 홍중은 다시 제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책상 위 액자에는 성화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첫 여행으로 제주도를 갔을 때 다리가 예쁘다며 찍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찍으면 애인이랑 헤어진다는 미신이 있는 장소였다. 그때는 미신 따위는 이기면 되지 않냐며 너스레를 떨었는데 이제 결혼까지 앞둔 걸 보면 미신이 맞았다.
띠링-
‘오늘 회식한대 ㅠㅠ’ - 친구
텍스트가 읽어주는 것도 아닌데 꼭 성화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유일한 내 친구이자 동반자, 성화가 오늘 술 냄새를 잔뜩 풍기고 들어올 것을 생각하니 달달한 꿀과 숙취해소제를 미리 구비해놔야겠다.
-
“어어. 스무디? 알겠어.”
잠깐 취재를 나간 성화를 대신해서 홍중이 성화의 것까지 음료를 주문했다. 성화의 딸기 스무디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서 돌아서는데 순간 사람을 보지 못한 홍중이 한 사람과 부딪혔다. 음료가 쟁반과 옷에 흘렸지만 상대 남자의 후드티가 더 젖은 것을 보고 홍중이 먼저 죄송하다며 휴지를 건넸다. 하지만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홍중의 휴지를 보지 못했는지 손을 내밀지 않고 그저 제 옷만 보는 듯했다. 본능적으로 그가 이상하다 느낀 홍중이 대신 휴지로 그의 옷을 닦아주려는데 남자가 홍중의 손을 쳐냈다.
“돼..됐습니다!..”
왜 이리 까칠해? 홍중은 속으로 생각한 뒤 제 손에 묻은 음료를 휴지로 닦는데 남자의 행동이 시선을 끌었다.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남자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자 상태를 보니 과호흡 오는 것처럼 느껴져 홍중이 살짝 고개를 숙여 얼굴을 확인하려는데 순식간이었다.
남자가 홍중의 어깨를 치고 카페를 뛰쳐나가고 모두가 이 이상한 상황을 쳐다봤다. 홍중 또한 어안이 벙벙해서 그가 나간 문만 쳐다봤다. 몇 초 동안 상황 파악을 하다 알바생이 다가와 음료를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하니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그저 재수 없는 해프닝이라고 넘겼다.
알바생이 새로 만들어 준 음료를 받고 카페 한쪽에 자리를 잡아 성화를 기다렸다. 새롭게 뜬 기사나 범죄가 없는지 뉴스 피드를 확인하는데 건너편에 인영이 보였다. 꽤 힘든 취재였는지 성화는 앉자마자 딸기 스무디를 빠르게 흡입했다. 또 얼마나 뛰어왔는지 성화의 볼에 흐르는 땀을 보고 홍중이 휴지로 그의 땀을 닦았다.
“뭐 하러 뛰어왔어. 괜찮은데.”
“그냥. 오랜만에 너 휴무인데 1분 1초가 아깝지.”
사실 그건 핑계고 빨리 보고 싶어서. 덧붙인 성화의 말에 홍중이 씨익 웃었다. 항상 먼저 표현해 주는 성화가 고마웠다. 무뚝뚝한 집안에서 자란 탓에 홍중이 애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걸 하게 한 것이 성화였다. 또한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기대하게 해준 것도 성화였다.
“다음 주 상견례 괜찮겠지?”
“우리 부모님 무뚝뚝해도 좋으신 분들이야. 걱정마. 너는 수녀님이 오신다고?”
“응. 원장님은 이미 돌아가셔서 마리아 수녀님이 나와주신대.”
사실 성화의 출신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홍중의 친구들도, 형이 결혼 사람도 모두 번듯한 가정이 있는 집안이었지만 성화는 달랐다.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성인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래도 성화는 혼자가 아니고 다행히 동생이 있다. 친동생은 아니지만 가족으로 호적에 올려 성은 달라도 꽤 각별한 사이라 했다. 홍중도 그 동생이 보고 싶었지만 아직까지도 성화는 홍중에게 동생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보여준 적이 없었다.
“동생은 이번에 상견례에 나와?”
“음.. 나오고는 싶어 하는데 이야기를 더 해봐야 할 거 같아.”
“동생이 어디가 아프다 했지?”
“그냥 뭐.. 공황장애야. 사람들을 좀 무서워해.”
성화가 공황장애라 이야기하자 아까 부딪혔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럼 그 사람도 공황 쪽인가?
“아까 내가 어떤 사람이랑 부딪혔는데 내가 죄송하다고 손 뻗어도 무시하고 가더라.”
“그 사람이 널 무서워했어?”
“좀? 손을 떨던데.”
“동생도 비슷해.”
아까 사람도 동생과 비슷할 사람일거라 생각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성화의 동생도 그런 쪽이라면 가족이 되도 만나긴 힘들 거 같은데.. 성화가 책임지려나. 막상 성화와 결혼을 생각해야 할 것이 많아졌다. 생각에 푹 잠긴 걸 눈치챈 성화가 홍중의 앞에 손가락을 튕겼다.
“너한테 책임지라 안 해. 동생 어차피 집에서 잘 안 나가고 직업도 혼자 집에서 하는 거라 괜찮아. 가끔 담당자 만날 때 가주는 정도?”
“뭐 하는데?”
“번역하고 있어. 영화 좋아하거든.”
금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제가 좀 속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사람이라도 신혼 생활이 처남으로 방해된다고 생각한다면 불편할 거라고 합리화했다.
“근데 너희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랬지?”
“그냥 뭐.. 아버지는 기관에서 일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쉬셔.”
“너희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너무 걱정이야. 우영이도 모르던데?”
“별로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 안 하고 다녀서 그래.”
“나 싫어하시는 거 아니야..?”
“우리 부모님 그런 거 신경 안 쓰셔. 걱정마.”
아무런 정보가 없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성화의 눈썹이 축 늘어졌다. 마치 그가 토끼였다면 귀가 늘어진 모양새였을 텐데. 상상의 귀가 떠오르자 홍중이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픽하고 흘러나왔다. 웃음을 들은 성화가 째려보며 웃기냐며 홍중의 볼을 잡아당겼지만 홍중은 웃음을 여전히 입가에 품었다.
더 웃으면 성화가 기분 나빠할 거 같아, 겨우 표정 관리하며 성화와 상견례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동시에 폰의 알람이 울렸다. 보통 이런 경우는 강력 사건 터졌을 때인데.. 내 아까운 휴무. 아쉬움을 토로하며 핸드폰을 열었다.
-”배우 김모씨, 10대 여학생 성추행 혐의로 기소.”
“미친 새끼 아니야.”
성화의 입에서 곧바로 욕이 나왔다. 김모씨라면 홍중도 아는 사람이었다. 배우라서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골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젠간 사고 칠 거 같은 사람이라서 아버지 보고 멀리하라 했는데 같이 이름이 언급되는 걸 보면 아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 같았다. 한숨 쉬며 아버지에게 연락하는데 여전히 씩씩대는 성화가 노트북을 꺼내 분노의 타자를 했다.
“성화야 진정해. 그렇게 해서 키보드 안 부서져.”
“넌 화 안 나? 나는 저런 인간 말종만 보면 화나.”
“성화 너는 유난히 저런 성 관련 범죄 보면 더 분노하더라. 원래 화도 없는 사람이.”
“..몰라. 그냥 화나.”
자기가 당한 일도 아닌데 성화는 꼭 제 일처럼 화냈다. 감성이 풍부해서 그런가? 아니면 항상 강력 범죄를 만나서 내가 무뎌져서 그런가.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들인데.. 저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니 화도 별로 안났다. 내가 이상한가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화가 조금이라도 화가 풀리길 바라며 지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달달한 케이크라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지겠지. 본인의 일도 아닌 것으로 오늘 데이트에 필요 없는 감정이 데이트를 망치게 둘 순 없었다.
-
“형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응응. 이제 곧 오실 거야.”
먼저 도착해서 홍중과 미래 시부모님을 기다렸다. 원체 성격이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기다림이 특기인지라 성화는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자리에 앉았다. 동생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성화가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며 선뜻 용기를 내준 것이 성화에게 더 큰 힘이 됐다. 동생이 룸에서 나가고 수녀님이 성화에게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 친구 상처는 많이 나았니?”
“아직은 현재 진행 중이에요. 그래도 가끔 혼자 카페 가서 커피도 사 오고 많이 괜찮아졌어요.”
“다행이구나. 나도 걱정이 참 많았는데.”
성화와 동생이 떠날 때 가장 많이 신경 써주신 것이 마리아 수녀님이었다. 꾸준히 찾아뵐 정도로 성화와 동생에겐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작게 기도하는 수녀님을 보고 성화도 잠깐 고개를 숙여 동생의 건강을 기도했다.
짧은 기도가 끝나자 홍중에게서 문자가 오고 성화는 목소리를 다듬었다. 인사를 거듭 연습하며 동생한테 얼른 돌아오라는 연락을 위해 핸드폰을 열었다. 하지만 동생에게서 온 문자는 성화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게 했다.
-”미안해 형. 나는 상견례 참여 못 할 거 같아.”
“성화야.”
“네가 박성화구나?”
문자를 봄과 동시에 홍중과 부모님이 들어오고 성화의 눈이 커졌다.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할, 성화의 가장 큰 분노를 일으키는 그 사람이 성화의 눈앞에 나타났다.
-
“김민중씨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전에 자주 보육원에 찾아와주셨는데.”
“그러게요. 제가 일이 바빠져 가질 못했네요. 아이들은 잘 있죠?”
수녀님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홍중은 계속 성화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인 것은 일부러 숨겼다. 아버지가 그런 사람인 것을 아는 순간 다들 홍중을 다르게 봤었다. 아 아버지 빽으로 들어왔대? 아버지가 청렴한 사람이라 닮았겠네 등등 홍중에게 하는 기대치가 너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자기방어 식으로 홍중은 자연스레 아버지 이야기를 숨기고 그것이 성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성화와 많이 다른 가정환경이 성화에게 알게 모르게 자괴감이 들까봐 걱정이었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모르는 거니까. 아버지의 얼굴을 봤을 때부터 인사말 이후 아무 말이 없는 성화에 홍중과 수녀님만 진땀을 뺐다. 혹시 체하거나 아픈 곳이 있나 폰으로 연락하려는데 아버지의 말이 먼저였다.
“성화는.. 어릴 때 아저씨 봐서 알지?”
“..네. 자주 오셨잖아요.”
“이렇게 커서 홍중이랑 결혼한다니, 운명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보구나.”
호탕하게 웃는 아버지에 성화도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문득 성화의 왼쪽 자리가 빈 것이 보였다. 동생도 나온다 했는데..
“근데 성화야, 동생도 나온다 하지 않았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서 집 보냈어. 죄송합니다. 두 분께도.”
“괜찮다. 아프다는 애를 붙잡아 둘 수 없지. 근데.. 혹시 그 동생도 보육원 출신이니?”
“어머. 김민중씨는 보육원 봤던 아이들을 다 기억하세요? 맞아요.”
“어쩐지. 아까 화장실에서 잠깐 봤는데 익숙한 얼굴이더라고.”
그 순간 성화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조용한 분위기에 숟가락의 낙하는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괜찮냐며 묻는데 성화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오늘따라 성화답지 않은 모습에 되려 홍중이 당황스러웠다.
“그 아이를.. 만나셨어요?”
“그럼. 내가 가장 아끼고 예뻐하던 아이인데. 입양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남의 아이를 입양? 아버지라면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인데.. 아버지의 웃음이 묘하게 속뜻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아무리 홍중이 눈치가 없다고 소문이 났어도 경찰의 촉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었다. 마치 범죄자를 만난 것처럼 홍중의 촉이 발동했다. 분명 아버지와 성화, 그 둘 사이에 홍중이 모르는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
상견례 자리를 어떻게 끝내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홍중과 시부모님을 보내고 수녀님을 보육원까지 태워다 드린 뒤 집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차마 올라갈 수 없었다. 동생을 대체 무슨 얼굴로 봐야 할지, 지금 저 방에서 또 혼자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지. 제 불찰이었다. 어떻게든 홍중의 부모님을 미리 알아봤어야 하는데. 겨우 봉합된 상처가 또 벌어졌다. 자책하며 핸들에 제 머리를 쿵쿵 찧는데 누군가 창문에 노크했다.
“집 간 거 아녔어?”
“그냥. 너 걱정도 되고, 처남 걱정도 되고.”
홍중이 조수석에 올라타고 걱정돼서 왔다는 것치곤 한동안 둘 사이에 말이 없었다. 홍중에게 동생의 일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지,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자극적이고 분노를 일으키는 용어였다. 성화의 마음을 모르는 홍중은 기어봉에 올려놓은 성화의 손을 맞잡았다.
“미안해. 속이려던 건 아닌데 나도 아버지가 국회의원인 거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어서..”
“너희 아버지.. 해바라기센터 홍보대사시더라?”
“아 그거? 그냥 어쩌다보니.. 아버지도 너처럼 그런 쪽으로 관심많으셔. 캠페인도 많이 하시고.”
하하. 갑자기 웃음이 났다. 정말 미친놈처럼 홍중의 말을 들으니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런 자가 홍보대사? 웃음이 나다 끝내 분노가 치밀어오르고 그대로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홍중의 당황이 옆 시선으로도 느껴졌지만 성화는 그 분노를 애써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이성적인 상태로 홍중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집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이렇게 홍중을 집에 초대할 줄은 몰랐는데 갑작스러운 홍중의 방문이었다. 집이 더러운 것보다 동생의 상태가 걱정돼서 홍중을 제대로 소개해 주기 전에 동생의 방으로 먼저 향했다. 노크한 뒤 방으로 들어가니 동생이 이불 속에 있는지 이불이 동그랗게 올라왔다. 천천히 걸어가 동생을 부르며 이불을 걷히니 눈이 잔뜩 부은 동생이 성화를 올려다봤다.
“아가, 많이 놀랐지. 미안해.”
“형.. 상견례인데.. 미안해.. 너무 놀라서..”
“응응, 아니야. 내가 더 신경 써야 했는데.”
다행히 그 사람이 홍중의 아버지인 것을 모르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동생을 재우기 위해 진정제를 찾아 먹이고 잠든 것까지 확인한 뒤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나오니 착잡한 얼굴의 홍중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까 식은땀까지 흘린 동생을 껴안고 토닥이는 모습을 봤다면 홍중도 얼추 상황 판단이 선 듯했다.
“너희 아버지를 얼마나 믿어?”
“성화야 나는..”
“우리에게, 특히 동생에게 너희 아버지는 악마야.”
“정확해? 정말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고?”
“최근에 기사 났었지? 내가 믿음직한 사람한테 증거를 넘겼었어. 하지만 증거불충분? 더 이상 검찰은 못 믿겠더라.”
분명 그때의 모습이 들어간 usb를 경찰에 익명으로 넘겼지만 돌아온 것은 증거 불충분이었다. 그 기사를 보자 얼마나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성화라면 하지 않았겠지만 바로 그 경찰에게 가서 따졌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영상은 담겨있지 않았다며 성화를 방해꾼 정도로만 치부했다.
“너라면 해줄 수 있어. 네가 그렇게 바라는 정의, 이게 그 정의야.”
“성화야.”
“설마.. 아버지라서 안 되겠다는 거야?”
곧바로 확답을 내리지 못하는 홍중에 성화는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게 하는 게 네 일이라며, 경찰이 하는 일이 그런 일이라며. 항상 성화에게 했던 말들이 모두 거짓으로 느껴졌다. 손을 놓은 것의 의미를 알았는지 홍중이 뒤늦게 이름을 부르며 손을 다시 잡았지만 성화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홍중은 힘없는 우리의 편일 줄 알았는데, 적어도 나를 사랑한다면 내 편일 줄 알았는데.
“홍중아 너한테 하라고 안 할게.”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할 테니까 넌 막지 마. 아니 나서지 마.”
-
그날 이후로 성화에게 꾸준하게 연락했지만 성화는 받지 않았다. 성화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녔다. 나였어도 당장 그런 사람은 감옥에 처넣고 싶을 테니. 하지만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죄를 비켜가고 피해자를 오히려 무고죄로 반격하며 더 나락으로 빠뜨렸는지 홍중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을 일하는 거로 대신하며 풀고 있을 때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을 입은 동료들이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다.
“웬일로 정장? 소개팅했냐?”
“..너 진짜 몰라?”
“뭘?”
모두가 곤란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홍중만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알아야 할 부고가 있었나? 따로 적어놓은 것이 있는지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는데 동료들의 말이 먼저였다.
“성화씨 동생.. 죽었잖아.”
동료들에게 장소를 받고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장례식장 앞에 도착했다. 부모의 이름도 적히지 않고 성화의 이름과 동생의 이름 석 자만 적힌 입구. 묘하게 묵직해진 가슴에 괜히 쿵쿵 주먹으로 치며 진정시키곤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은 유일하게 성화밖에 남지 않은 그의 빈소는 조용했다. 몇몇 성화의 동료가 왔다 갔는지 치워지지 않은 테이블은 그대로였고 빈소 안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성화가 동생의 영정사진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혼이 나갔으면 제가 온 것도 눈치 못 채는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직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진으로 본 동생의 얼굴은 밝고 선했다.
성화 모르게 부조금을 넣은 뒤 더러운 테이블을 하나씩 치웠다. 성화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행한 일이었지만 제가 왔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조금 있었다. 테이블을 다 치워도 성화는 눈치채지 못했는지 여전히 자세는 똑같았다. 답지 않게 긴장하며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빈소로 들어갔다.
“성화야.”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홍중을 보고 성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팔을 벌리고 홍중이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 잠깐 사이에 이렇게 마를 수 있는지, 안아도 앙상한 느낌이 먼저였다.
“많이 힘들지.”
“홍중아.. 내가 너무 약해. 어떡하지?”
그 말을 끝으로 성화가 홍중의 어깨가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힘들면서 티를 안 냈을 성화가 미련하면서도 불쌍했다. 홍중이 등을 토닥이자 더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을 드러냈다. 한참 감정을 드러내다 성화가 소매로 눈물을 닫았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홍중의 허벅지에 베고 누워 눈을 감았다. 입고 온 정장이 좀 추워 보여 홍중은 겉옷을 벗어 성화를 덮어줬다.
“좀 자. 며칠 동안 못 잤을 거 아냐.”
“…. 고마워. 사실 나 너무 힘들었거든.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거에..”
“괜찮아. 동생은 너랑 같이 있어서 그동안은 행복했을 거야.”
성화의 등을 토닥이며 그가 잠이 들 수 있도록 마음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동생 사진을 보는데 성화와 달리 순한 얼굴이었다. 정말 성화의 말처럼 그가 우리 아버지와 관련이 있는 걸까. 성화가 준 usb를 확인하면 됐지만 홍중은 아직 진실에 다가가기 겁이 났다. 정의와 천륜, 그 사이를 홍중은 고민했다.
“홍중아 넌 왜 경찰이 됐어?”
자는 줄 알았던 성화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서 했지.”
“정의는.. 적어도 정의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의 편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성화의 말이 홍중의 머리를 탁하고 쳤다.
“돈도, 빽도 안 되는데 정의마저 그 사람들 편이면 우리 같은 사람은 어떡해?”
결국 홍중은 성화의 마지막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
이틀 동안 성화를 도와주고 아직 남은 잔일을 하기 위해 서로 돌아왔다. 성화는 이런 아버지와 관계를 맺지 못하겠다며 홍중과의 사이를 보류했다. 그의 마음을 백번, 천 번 이해해서 홍중은 그를 붙잡지 않고 마음부터 추스라며 토닥일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환기하기 위해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는데 담배 대신 다른 물건이 손에 착 감겼다. 그대로 꺼내보니 성화가 준 usb였다. 마치 꼭 자기를 봐달라는 것처럼 홍중의 손을 괴롭혔다. 이 usb를 보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을 홍중도 알고 있었다. 돈 많은 사람도 죄를 지었다면 무작정 처넣고 보는 것이 홍중이었으니까.
과연 이것을 보고 아버지와 연을 끊을 수 있을까? 이걸 보지 않고 성화와 관계를 지속하는 건 어려울까? 아니, 애초에 아버지를 검찰에 넘길 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자꾸 생겨났다. 그 꼬리들이 홍중의 머리를 휘감고 결국 홍중은 usb를 제 컴퓨터에 꽂았다.
usb 속에는 단 한 가지 영상만 들어있었다. 제목도 단순하게 14.05.05였다. usb를 꽂기까지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막상 이 영상을 클릭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하지만 머릿속에 울던 성화의 모습이 맴돌고 결국 마우스의 왼쪽을 눌렀다.
영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분가량 되는 영상이었는데 화질이 안 좋아도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명백하게 보였다. 영상을 차마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보였으나 뒤로 갈수록 역겨움에 홍중은 그대로 휴지통에 토했다. 역겨움과 동시에 마음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이 영상을 보는 순간 홍중은 마음이 확고해졌다. 홍중은 처음 경찰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햇병아리 시절,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던 제 모습.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같았다. 홍중은 영상을 복사한 뒤 다른 usb에 넣고 원본을 챙겨 자리를 떠났다. 시간이 지나며, 사랑을 하며 잊었던 어릴 적 결심이 다시 떠올랐다.
-”성화야, 지금 너희 집으로 갈게.”
-
서에서 나오는 김홍중을 많은 기자들이 둘러쌌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아들이 아버지를 고소한 사실은 꽤 기자들의 구미를 당겼다. 홍중이 잠깐 계단에 서자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밀었다.
“김민중 의원과 부자 관계를 왜 숨기셨습니까?”
“김홍중씨는 이 사실을 2014년도에 이미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최근 증거불충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홍중씨!! 여기 봐주세요.”
수많은 질문이 날아왔지만 홍중은 입을 꾹 다문 채 주위를 둘러보고 그제야 이 일의 원동력인 그가 보였다. 홍중은 그에게 걸어가고 성화는 그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어쩌다가 마음을 먹게 됐습니까?”
“사랑과 정의 중 택하라면 저는 사랑입니다. 사랑과 정의가 한 편인데 제가 어찌 다른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홍중은 마이크 잡은 성화의 손을 잡아당겨 그의 볼에 뽀뽀했다. 질문으로 시끄러웠던 몇 초 전과 달리 경찰서 앞은 사진 찍는 소리만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