웡섷

엑스텐

by. ing

Warning

글의 설정은 허구임으로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트리거요소 욕설 포함, 주의 부탁드립니다.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연속 텐으로 금메달을 따고 인기를 휩쓸었던 박성화가 양궁단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우영으로부터 순위가 밀려났다. 박성화가 몇 년간 연습했던 결과를 정우영이 따라잡은 것이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는 박성화가 아닌 정우영에게 몰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국가대표 선발전이라곤 하지만 늘 자신이 1위인 게 일상이었던 박성화에게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야 정우영. 너 뭐냐?”

“왜요? 제가 형 보다 잘나가니까 부러워요?”

“야 너ⵈ.”

정우영은 박성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 올림픽 시작도 전에 감정 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이후로도 정우영과 박성화의 관계는 큰 변화가 없었다. 코치의 부탁으로 도와줄 때 외엔 말을 섞지 않았다. 그렇지만 올림픽이 개막하고 결승까지 갔을 땐 둘의 이름이 나란히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기어코 결승에서 둘은 서로를 상대로 경기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경기는 예상처럼 쟁쟁하게 이루어졌고 4세트까지 마쳤을 땐 동점이 되어 슛오프를 해야 했다.

박성화 선수, 10

박성화가 10점을 쏘고 안도감에 심박수가 치솟을 때 정우영은 오히려 차분해지려 숨을 가다듬는다. 정우영의 활이 과녁에 꽂힐 때까지의 적막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정우영 선수, X-10

박성화는 그걸 보는 순간 피가 차게 식는듯했다. 관중석에서는 환호가 쏟아지고, 박성화는 눈앞이 흐릿해져 휘청거린다. 정우영은 금메달, 박성화는 은메달을 따고 경기가 종료됐다. 경기가 종료되고 인터뷰를 할 땐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

“박성화 선수, 오늘 경기결과 만족하십니까?”

“저는... 사실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숙소로 돌아와서 박성화는 정신이 한참 나가 있는 것 같았다. 코치는 정우영에게 박성화를 달래 달라고 부탁한다. 정우영은 자신에게 지고 힘들어하는 것이 꼴사나워 말 걸어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박성화는 티비를 보며 멍때리다 정우영의 인터뷰를 본다.

“정우영 선수, 박성화 선수를 제치고 양궁 1위 타이틀을 차지하신 심정이 어떠십니까?”

“당연히 기분이 좋고요. 제가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ⵈ.”

박성화는 티비를 끄고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당연히 좋겠지. 뭐 저런 질문을 다 해.. 혼자 중얼거리며 훈련을 위해 밖으로 나선다. 양궁장으로 들어서니 정우영이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방에서 그렇게 나올 생각을 안 하더니, 이제 좀 괜찮은가 보지?”

“왜 반말이야. 닥치고 활이나 잡아라.”

정우영은 헛웃음을 짓더니 과녁을 향해 활을 겨눈다. 박성화도 옆 칸에 들어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정우영이 쉬려는 건지 나와서는 냉장고에 있는 생수를 하나 꺼내 들고 벤치에 앉는다. 박성화가 한 게임을 마치고 있을 때쯤에는 정우영이 앉아서 박성화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쳐다봐? 할 말이라도 있어?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답지 않게 자신을 쳐다보는 정우영이 이상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형 연습하는 동안 코치 왔다 갔어. 코치가 우리 같은 팀으로 출전하래.”

“뭐라는 거야. 코치님이 그러셨다고?”

그렇다니까. 정우영은 제 말을 믿지 못하는듯한 말을 하는 박성화가 답답했고, 박성화는 코치님이 그러셨을 리가 없다며 따지고 들었다.

“왜 자꾸 그러는 건데. 형은 나랑 출전하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야?”

“야, 너 말 다했냐? 장난해?”

“맞잖아. 몇 년 동안 뼈 빠지게 해서 금메달 딴 거 내가 뺏을 정도면 존나 못하는 거지.”

더 이상 싸우기 싫다. 먼저 들어갈게. 박성화는 한마디만 남기고 숙소로 들어갔다. 박성화는 방에 들어가서 소리 없이 운다. 제가 못하는 걸 정우영 탓만 한 것 같아서. 옆방에 있던 정우영도 나름대로 잘해보려 했는데, 순간 튀어나온 말 때문에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우영은 이 관계를 어떻게든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방을 박차고 나와 박성화 방문을 두드린다.

“형, 안 자는 거 알아. 문 좀 열어봐.”

박성화는 눈물을 닦고 방문을 열었다. 눈물을 닦아도 불그스름한 눈이 보였는지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낸다. 울었어? 정우영이 한마디를 던지자 박성화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 형 하기 싫으면 하지 말자.”

“같이 해. 나 이번에 출전하고 관둘 거니까.”

ⵈ.

정우영이 양궁을 시작하게 된 건 박성화였다. 오로지 박성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성화가 올림픽 진출할 때부터 금메달을 딸 때까지의 모습은 정우영이 봐왔다. 활을 당기고 집중하는 박성화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였을까. 정우영은 박성화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만두고 싶을때도 박성화를 생각하면 결국 또 활을 잡고 있었다. 정우영을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해준 게 누군데, 그 사람이 양궁을 관두겠다니 말도 안 된다.

“나 쉽게 결정한 거 아니야. 내일 코치님한테도 말씀드릴게.”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는 거, 그건 말하지 않아도 정우영이 잘 알고 있었을 테다. 정우영은 박성화를 말리기 힘들 것이란 걸 직감했다. 여태 그래왔던 사람이기에.

커튼 틈으로 햇빛이 새어 들어올 즈음, 정우영이 일어나 훈련장으로 향한다. 훈련장엔 박성화가 이미 와 있었다.

“야 정우영! 너 맨날 이 시간에 나왔냐? 잘하는 이유가 있었네.”

박성화는 평소답지 않게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을 걸었다. 어제 한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후련해 보였다. 정우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박성화의 옆으로 다가간다.

“활 쏠 때는 겁먹지 말고 해봐. 형 맨날 겁먹는 거 다 보여. 이번엔 혼자 하는 거 아니니까 편하게 해.”

야간까지 훈련을 마친 박성화가 정우영을 불렀다. 야 우영아. 정우영은 부르더니 말을 잇지 않는 박성화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나는 니가 너무 싫었는데, 그냥 갑자기 나타나서 나보다 잘나가는 니가 짜증나고 마음에 안 들었어. 근데 넌 왜 날 도와줘..”

박성화가 말을 마치자 정우영은 한숨을 쉬면서 말을 한다.

“형은 유리구슬 같아. 너무 예쁜데, 만지면 깨져버릴까 봐 두려워. 도와준 적도 없어.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준 거야.”

박성화에게 정우영은 시기의 대상.

정우영에게 박성화는 선망의 대상.

어쩌면 서로를 더 잘 알 수밖에 없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약점은 서로만이 안다.

어느 때 보다 노력했기에 다른 경기들에 비해 훨씬 긴장한 정우영과 박성화가 입장한다. 박성화가 9점을 쏘면 정우영이 10점으로 채워주고, 정우영이 9점을 쏘면 박성화가 10점으로 채워준다. 상대 팀과 끝없는 싸움에 결국 슛오프까지 진행된다.

정우영 선수, X-10

그러자 당연하다는 듯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박성화 선수, X-10

이어 박성화까지 엑스텐을 터뜨리니 더 큰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정우영과 박성화는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며 단상 위로 올라간다.

경기가 끝나면 박성화가 늘 해왔던 인터뷰였지만 오늘따라 심장이 빨리 뛰고 벅찼다.

“박성화 선수 이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셨을 것 같은데 은퇴하시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늘 양궁에만 집중하면서 높은 정상을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최고가 아니면 실패라는 생각으로요.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은 걸 놓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양궁보다 더 집중해야 할 사람이 생겼고, 그 사람만을 향해 달려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