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섷

Silver lining Moonlight

by. 슝슝

Warning

인외소재

성화는 어려서부터 반짝이는 걸 유독 좋아했다.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조각부터 값비싼 보석까지, 반짝이는 것만 보면 뭐에 홀린 사람처럼 가만히 바라보다 쫓아가곤 했다. 어린 성화는 세상을 잘 몰랐기에 성화의 어머니는 매번 성화가 없어지진 않을까 성화가 다섯 살이 넘도록 성화를 등에 업고 다니곤 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성화에게 선물해주신 목걸이가 있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성화가 열심히 관리한 덕택에 광채를 잃지 않은, 성화를 닮은 하얀 다이아가 펜던트로 달려있는 얇은 목걸이였다. 요즘 부쩍 머리가 긴 탓에 머리카락에 걸리면 종종 목걸이가 풀어지곤 했다.

그날도 머리를 매만지던 성화의 손에 목걸이가 풀어져 땅으로 떨어졌다. 허리를 숙여 주우려던 찰나, 까마귀 한 마리가 성화의 앞으로 날아들었다. 그리고는 성화의 목걸이를 물고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다. 시선으로 까마귀를 좇던 성화는 까마귀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빠르던지 열심히 뛰어도 까마귀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까마귀만 바라보며 달리던 성화는 어느 으슥한 골목길에 다다라서야 다시 까마귀를 눈 앞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나한테 소중한 목걸이야. 돌려줄래? 착하지."

목걸이가 발에 걸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까마귀에 지레 겁을 먹고 겨우 다가가던 성화의 팔이 목걸이에 닿으려던 찰나, 커다란 그림자가 성화의 위로 겹쳐졌다. 놀라 고개를 든 성화가 마주한 건 까마귀 날개를 가진 키 큰 남자였다. 생긴 건 오히려 사냥개같은데 까마귀라니. 성화는 어릴 때 만화에서 봤던 하울이 생각났다. 저 남자 까마귀에 예쁜 거 좋아하는 게 하울이랑 똑같잖아.

"여기까지 따라올 줄 몰랐는데."

"돌려주세요. 제 거잖아요."

"그렇게 소중한데 너무 안일하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야?"

"그게 그쪽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오래돼서 어쩔 수 없어요. 얼른 주세요. 신고할 거예요."

"신고? 신고하면 뭐라고 하게. 까마귀가 제 목걸이를 안 돌려줘요?"

가소롭다는 듯 성화를 쳐다보던 남자가 날개를 펼쳐 성화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 움직임이 꽤나 위협적이어서 저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아버린 성화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성화와 남자는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으악! 내려줘요. 무, 무서워! 빨리 내려줘요! 으아악!!!!!!!!"

"조용히 좀 해. 자꾸 소리지르면 떨어트릴지도 몰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성화가 떨어지기는 싫었는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던 찰나, 날개가 펼쳐지며 성화와 남자는 아래로, 더 아래로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처음 보는 장소, 우두커니 서있는 집 한 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여긴 또 어딘데, 나 집에 가고 싶다고! 남자의 몸에서 돋아난 날개가 작아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남자는 성화를 한 번 쳐다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니, 내가 집에 보내달랬잖아요. 여긴 또 어딘데."

"너 진짜 말 많다. 난 데려다 주겠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데려다 달라고요. 당장 목걸이 이리 줘요."

남자의 손에서 목걸이를 낚아챈 성화가 다시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잠금 고리가 아예 고장이 났는지 묶이지 않아 성화는 가방 속 파우치에 목걸이를 넣고 가방 끈을 손에 꼭 쥐었다. 혹여 다시 뺏어가진 않을까 긴장의 끊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잔뜩 긴장한 성화를 보고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너 지금 뭐해? 긴장 풀어."

"집에 갈래요. 나 집에 보내줘요."

"싫은데. 여기 들어오면 바로 못 나가."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들어올 때 그런 말 없었잖아."

"안 물어봤잖아. 딱 3일만 얌전히 있으면 집에 데려다 줄게."

성화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당연하게도 핸드폰에 통신상태를 알려주는 아이콘이 통신 불가능 지역임을 알렸다. 대체 여긴 어딘데 핸드폰도 안 터져? 지금의 성화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저 남자의 말을 잘 듣고 3일 뒤에 집에 돌아가는 방법이 유일한 탈출 방법이었다. 성화는 남자의 맞은편 소파로 가 앉았다. 물론 남자를 힘껏 째려봐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름이 뭐야. 그래도 3일이나 같이 있어야 하는데, 통성명은 해야 하지 않겠어?"

"이름 알아서 뭐 하게요. 그냥 아까처럼 야 너 이렇게 불러요."

"고집 봐라. 내 이름은 민기야. 송민기."

"까마귀도 이름이 있어요? 박성화예요."

"까마귀 무시해, 지금?"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성화는 분에 못 이겨 발로 바닥을 쿵쿵 내려 찍었다. 하는 짓이 심통난 어린아이 같아서 민기는 성화의 머리를 잔뜩 헝클이고 부엌으로 향했다. 컵 두 개를 들고 나오며 하나는 성화의 앞에, 하나는 제 무릎 위에 올려두고 성화를 쳐다봤다.

"마셔, 뭐 안 탔고 그냥 코코아야. 아직 의심하는 것 같아서."

민기의 말에 성화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컵을 입에 가져갔다. 달달한 초콜릿 향이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아 한결 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댄 성화가 코코아를 한 모금 마셨다. 먹을 거 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 아니랬어. 마음대로 결정해버린 성화가 코코아에 집중했다. 긴장을 풀고 나니 집 안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와,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 엄청 아늑하고 예쁘다. 성화가 눈을 빛내자 민기가 그런 성화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집 예쁘지. 같이 지냈던 친구 취향이야. 예쁜 걸 좋아했거든."

"아, 지금은 같이 안 지내세요?"

"어, 사정이 좀 생겼거든. 멀리 떠났어."

"...... 제 목걸이는 왜 가져가려고 한 거예요?"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목걸이랑 비슷해서, 주인 찾아주려고."

"친구 분 얘기 더 해주시면 안 돼요?"

"옛날 얘긴데 뭐 재밌다고. 나중에 해줄게. 2층에 있는 방 쓰면 되고, 복도 제일 끝 방은 열면 안 돼."

말끝을 얼버무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민기가 방으로 향했다. 집에 있는 물건은 마음대로 써도 되고, 방 안에 있는 옷도 편하게 입고, 음식도 원하는 만큼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절대 복도 끝에 있는 방은 열지말라는 경고와 함께. 성화는 일단 피곤한 몸을 누이고 싶어 컵을 부엌 싱크대에 넣어놓고 터벅터벅 계단을 올라갔다. 방문을 여니 아늑한 1층의 인테리어와는 다르게 깔끔한 화이트톤의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익숙한 듯 이질적이어서 이 곳이 아예 다른 세계라는 걸 다시금 성화에게 알려주는 듯 했다.

가방과 겉옷을 벗어 걸어두고는 침대로 몸을 던졌다. 성화의 머릿속에는 아까 말했던 민기의 친구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차있었다. 예쁜 걸 좋아하던, 성화의 목걸이와 비슷한 목걸이를 가진 사람. 성화는 문득, 어린 시절 잠들지 못하던 어린 성화에게 들려주던 엄마의 동화가 생각났다. 엄마가 그때 말해준 내용이 뭐였더라. 그 동화에도 까마귀가 나왔던 것 같은데......

계속 이어지는 생각에도 다사다난한 하루에 지친 몸뚱아리는 잠을 원했다. 점점 감기는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성화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꿈 속에서 성화는 어머니를 만났다. 많아봐야 스무 살? 십 대 소녀로 돌아간 듯한 어머니와 한 남자. 둘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서로를 쳐다보며 즐거워했다. 아쉽게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한 표정의 둘을 바라보던 성화는 제 입가에 걸리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마치 오래된 영화처럼 움직이는 두 사람에 성화는 가만히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을 감상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하늘 아래 두 남녀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한참을 하늘만 구경하던 찰나, 남자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들었다. 헉, 고백이라도 하려나? 성화는 입을 가리고 숨쉬는 것도 잊은 채 둘을 바라봤다. 남자가 작은 상자를 건네려던 찰나, 앞으로 휙 고꾸라졌다. 놀란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두 사람에게로 키가 큰 인영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성화는 그들을 지키려 손을 뻗었지만 손이 닿지 않았다. 대신 놀라운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린 엄마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이내 키 큰 남자를 향해 커다란 불꽃이 날아들었다. 불이 붙어 허둥대는 사이 어린 엄마는 남자를 안아 부축하고는 말 그대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몸에 불이 붙은 키 큰 남자가 성화를 발견하고 달려드는 순간, 성화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무슨 꿈이 이렇게 생생해. 땀에 잔뜩 젖어 꿈에서 깨어난 성화가 거친 숨을 뱉는 사이 문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사색이 된 얼굴의 민기가 성화에게 달려와 손을 붙잡았다.

"박성화, 너 괜찮아? 땀 좀 봐. 소리지르는 거 듣고 올라왔는데. 너무 늦었지."

"......괜찮아요. 물 좀, 가져다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방을 나간 민기가 있던 자리를 달빛이 채웠다. 겨우 숨을 고르며 창 밖을 내다본 성화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 봤던 키 큰 남자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성화를 노려보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이불을 끌어 머리 끝까지 덮었다. 자꾸만 손이 미끄러져서 눈물이 절로 났다. 민기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성화야, 물 가져ㅇ..."

"......"

"!!!!!"

쨍그랑, 물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바람소리가 성화의 귓가를 스쳐갔다. 휙 하고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이불 밖이 번쩍였다. 급히 이불을 걷어낸 민기가 성화를 품에 안았다.

"미안, 미안해.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미안해."

확 몰려오는 안도감에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마치 오래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민기의 품에 안겨 성화는 어린아이같이 엉엉 울었다. 아무래도 그 꿈이 민기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이 남자는 무슨 사이였을까. 그리고 창 밖에 있던 커다란 남자는 또 누구였을까. 한참을 울던 성화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민기를 밀어냈다.

"이제, 됐어요."

"좀 진정 됐어? 일단, 같이 내려가자."

깨진 유리를 피해 성화를 침대에서 내려준 민기가 성화를 품에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아까처럼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옆에 앉은 민기가 말없이 연신 성화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 그 꿈 내용이 지금은 더 중요했다.

"말해줘요. 다 알고 있었죠?"

"뭐, 뭘 다 알고 있어?"

"내가 꾼 꿈이랑, 아까 창밖에 있던 그 괴물이랑, 그리고 이 목걸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요."

"......아직은 안 돼. 내일 얘기해줄게."

"싫어요. 지금 얘기해 주세요. 저 여기 박차고 나갈 거예요."

"오늘은 못 해. 안 돼. 위험해."

"뭐가 위험한데요."

"내일까지만 참아. 보름달이 뜨면, 그때 얘기할 수 있어."

"그럼 우리 엄마랑 무슨 사이인지만 알려줘요."

한숨을 크게 내쉰 민기가 성화를 바라봤다. 크고 동그란 눈이 제 엄마를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는 알려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네 엄마는 우리 형의 오래된 연인이자, 내 오랜 친구였지. 우리는 떨어지는 시간 없이 거의 종일 붙어 지냈어.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랑 활발히 교류했으니까. 사람들도 우리에게 친절했고. 아마 네 목걸이는 그때 우리 형이 너한테 줬던 선물이었을 거야. 단순한 다이아 목걸이가 아니라, 그 목걸이를 지닌 사람을 지켜주는 마법이 걸려있거든. 물론 이렇게 얘기해도 네가 쉽게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아. 이 시대에 마법이며, 수인이며 하는 얘기는 다 헛소리처럼 들릴테니까..."

횡설수설 말을 뱉던 민기는 조용한 성화에 절로 숙여진 고개를 들었다. 성화는 민기에게 기대 다시 잠든 상태였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화를 안아든 민기가 제 방에 성화를 눕혀두고는 2층에서 성화의 짐을 가져다 성화의 옆에 올려주었다. 이불을 다시 잘 덮어주고는 거실로 나왔다. 오늘따라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시렸다. 민기의 고민이 깊어지는 새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