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섷
Demian
by. 파토
Warning
소재상 기독교인에게 불쾌할 수 있음. 이단, 반기독교적 내용 포함.
"죄가 꼭 악하고 나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스스로 죄를 범하도록 만들어졌다면. 죄는 그저 자연스러운 거잖아. 죄는 죄일 뿐이ㅈ-"
"김홍중 너 미쳤어?!"
홍중의 옆자리에 앉아있었던 성화는 더한 망발을 담으려 하는 홍중의 입을 틀어막았다. 한 손에는 분필을 다른 한 손에는 창세기를 든 선생님의 눈빛이 처음 보는 험악한 적대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성화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홍중을 교실 밖으로 끌고갔다. 입이 틀어막힌 홍중은 뭐가 문제냐는 듯 의아한 눈만 꿈뻑일 뿐이었다. 그 순간 홍중에게서 보였던 것을 당시의 성화는 해석하지 못했다.
독실한 신자들이 모여 마을을 만들고, 모태신앙으로 자라난 아이들만 모아 신학교를 세운다고 한들 홍중과 같은 이단아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홍중같이 극단적인 아이는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했다.
냉담자도 이단자도 아니었다. 완전한 배교. 성화는 홍중을 통해 환경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선천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런 홍중이 바로 다음 시간 신학 선생님께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서 학교는 물론 마을에서도 파문당하리란 건 어린 성화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망발을 지껄이는 홍중 옆에서 성화는 제 머리를 움켜쥐고 책상에 쿵 엎어졌다. 으아아. 이제 난 몰라.
"뭐가 선이고 악인지 깨달았으니, 에덴에서 발가벗고 살 수는 없겠지."
"..."
후련한 웃음이었다. 도저히 선악과를 깨물었다는 죄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저만 이 이별이 아쉽고 속상한 걸까. 입술을 말아문 성화가 다시 눈을 들어 홍중을 봤다.
홍중의 눈은 알 수 없는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빛은 선하지도.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았다. 깨달음을 얻어 어떠한 경지에 다다르기라도 한듯 홍중은 한없이 고요함과 동시에 격렬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빛은 아름다웠다.
눈부신 홍중의 빛 속으로 몸을 던지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을 애써 무시한 채, 성화는 홍중에게 안녕을 고했다.
-
바스락-
"이게 뭐지?"
다음날. 홍중이 없는 일상을 시작한 성화는 제 책상에서 쪽지를 하나 발견했다. 간단한 네모꼴로 접혀있는 쪽지를 펼치자 알쏭달쏭 뜻을 알기 어려운 문장이 성화를 반겼다. 성화가 단 하나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그 문장이 홍중의 손글씨를 빌어 쓰였다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좌우로 눈을 굴려 짧은 글을 읽으니. 성화의 머릿속에는 태어나기 위해 딱딱한 알껍데기를 쪼는 아기새가 그려졌다. 주어진 시간내에 알을 깨지 못한다면, 새는 숨이 막혀 죽어버리고 부화는 그대로 실패한다지. 세상 빛을 본 적도 없는 핏덩이의 목숨을 건 투쟁을 떠올리자 쪽지를 쥔 성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화는 질끈 눈을 감고 제가 떠올리는 심상에 집중했다. 끝내 알을 깨고 나와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새. 눈부신 빛을 향해 날아가는 작은 새에게서 점점 익숙한 형상이 겹쳐졌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홍중의 뒷모습이었다.
널 감싸고 있던 세계를 파괴한 너는, 무엇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까.
가늘게 눈을 뜬 성화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브락사스.
아브락사스는 활동이다. 비실재를 제외하고는 그 아무것도 아브락사스에게 대항할 수 없다.
아브락사스는 선과 악, 빛과 어둠 등의 대립되는 개념들 그 너머에 존재하며, 그 어떤 신보다도 가장 불분명하고 초월적인 존재이다.
...또한 인간이 내적으로 성장해 자아를 형성하기 위한 통합, 성숙, 일체화의 과정을 추진하는 힘의 상징이기도 하다.
"...뭐라는거야?"
도서관 구석에서 겨우 찾아낸 책의 먼지를 탈탈 털며 성화가 기침을 했다. 세월에 바스라져 누런빛을 띠는 종이를 꼼꼼히 읽어봐도 도통 무슨 소린지. 하지만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이름을 함부로 선생님께 물어볼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다 이단이라고. 악마 숭배라고 저도 홍중처럼 파문당할지 모르니까. 홍중은 이 마을 밖에서 살아갈 자신이 있었지만 성화는 그것도 아니었기에 몸을 사려야 했다. 아무튼간에 이 알 수 없는 존재를 향해 날아간 새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 녀석, 음악을 할 거라고 했는데.
-
믿음도 없이 신학을 공부하느니. 다른 무엇이라도 도전하는 게 바람직하고 홍중다운 결정이라고 성화는 생각했다. 그래서 홍중이 기다렸다는 듯 마을을 떠날 때에도 성화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를 붙잡기에는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성화의 마음은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었으니까. 성화는 알을 깨고 나온 새가 새장에 들어가는 대신, 제 꿈을 찾아 멀리멀리 날아가길 바랐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홍중은 지금 성화의 옆에 누워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흙먼지만 겨우 막아주는 천막으로 지어진 야전병원. 이곳이 홍중과 성화에게 뜻하지 않은 재회를 선사함과 동시에 둘을 죽음이라는 낭떠러지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쿨럭. 성화의 기침에 피가 섞여나왔다. 홍중은 길고 예쁜 속눈썹을 내리깐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느닷없이 시작된 전쟁은 홍중과 성화를 비롯한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왔다. 그렇게 도시에서 곡을 쓰며 제 꿈을 펼치던 홍중도, 태어난 마을에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성화도 모두 끌려와 억지로 총을 쥐었고, 똑같은 사람을 향해 총구를 겨누다 종국에는 폭발에 휘말려 흙바닥에 누운 채 죽을 때만을 기다리는 몸이 되었다.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한숨을 흘려보내며 성화는 회상했다. 돌이켜보니 무엇 하나 제 맘대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이었다.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믿어왔던 삶. 성화는 숨이 막혀왔다. 저는 껍데기를 깨지 못하고 알 안에서 죽어가는 나약한 새였다. 눈을 연신 깜박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여전한 어둠이었다.
"성화야."
금방이라도 꺼질 듯 나약한 목소리가 성화를 불렀다. 성화가 절망에 감겨가던 눈꺼풀을 치켜올리자 느릿하게 눈을 꿈벅이는 홍중이 보였다. 홍중아. 성화도 그를 마주 부르고 싶었지만 비린 액체가 자꾸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입을 열 수 없었다. 성화의 다물린 입술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피를 본 홍중은 저 혼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네게로 돌아가고 싶었어, 성화야. 보란듯이 음악으로 성공한 다음 내 발로 떠났던 우리의 마을에 가고 싶었어. 어린 내가 속으로 삼켜야 했던 말들을 노랫말 삼아 춤을 추며,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
"...욱- 콜록."
"교만하기 짝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태초의 샛별처럼 이리로 추락한 걸지도 몰라. 그래서 너도 나와 함께 몰락한 걸지도 몰라. 신의 세계에서 죄는 혀로 지어지는 것이고 벌은 모두가 받는 것이니까. 미안해, 성화야..."
루치페르, 혹은 루시퍼. 홍중이 한 말에서 성화는 그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섯 쌍의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도 지옥 저 밑바닥까지 떨어져 타락해버린 천사. 마을에서 파문당할 정도로 종교에 적대적이었던 홍중이 되려 성경을 인용하는 모습은 뭐랄까, 성화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할 수 없는 손이 성화의 손을 잡아왔다. 둘 모두 전쟁의 처절함 속에서 상처나고 얼룩진 꼴이었다. 그럼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성화가 천천히 날숨을 뱉었다. 갈수록 숨이 가빠왔다.
"누구도 죄를 짓지 않고, 누구도 벌받지 않는 세상이 어디에는 있을까? 그런 이상 따위 진실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을까? 아니, 그렇게 완벽한 세상에 나는 이미 속할 수 없겠지..."
"콜록- 홍중아."
"하지만. 그래도 성화야. 내게 그 세상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면."
모로 누운 홍중의 눈꼬리에선 이미 눈물길이 뻗어져 나오고 있었다. 성화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홍중을 불렀다. 하지만 홍중도 성화 못지않게 필사적인 듯, 제가 하고싶은 말을 꿋꿋하게 계속했다.
울컥 하고 차오르는 가슴 속 통증을 버티다 못한 성화가 먼저 상체를 일으켜 두 손으로 홍중의 얼굴을 감쌌다.
"꼭 너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눈감아 김홍중."
피가 흐르는 입술로 성화가 홍중에게 입을 맞췄다. 왠지 모르게 홍중이 해야 했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홍중이 원하는 만큼 이야기를 늘어놓고 다정한 입맞춤까지 나누기엔 저희의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성화는 제 쪽에서 고개를 틀며 못다한 홍중의 말은 다음에 듣기를 기약했다.
다음. 우리에게 다음이 있을까.
*
"눈떠 홍중아."
"으응? 나 안 잤어... 이건 책과 교감을 나누는 거란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구."
음악방송 대기실의 긴 소파에 누워 민기와 정수리를 맞댄 홍중이 저희가 베고 있던 책 한권을 들어보였다. 파피용. 회사에서 추천해준 책이다. 우리 에이티즈의 세계관과 통하는 지점이 있을거라며- 아니,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홍중아 우리 한시간 뒤에 무대 올라가야돼.
"아직 책 덜 읽었는데에. 지구를 탈출한 인류가 결국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었는가에 관해-"
"교감이고 잠이고 무대를 생각해! 이게 얼마나 소중한 자리인지 잘 알면서 왜,"
"중요하지. 중요하고말고. Say My Name... 음... 아브락사스, 유토피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홍중의 잠꼬대에 성화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눈썹을 찌푸렸다. 여전히 눈은 감은 채. 하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은 홍중이 생각을 정리하는 듯 얌전히 숨만 쉬었다. 성화는 잠자코 홍중을 기다렸고, 쌕쌕 잠든 숨을 내쉬는 민기는 아직 한창 꿈나라였다.
다시 열린 홍중의 입술 밖으로 나오는 문장은 성화의 기시감을 자극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데미안?"
"아, 맞다. 이건 데미안에서 나온 말이었지. 아무튼 말이야, 성화야. 넌 아브락사스가 뭔지 알아?"
"...아니."
성화는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뭔데, 라는 삐딱한 말투는 홍중 몰래 꼴까닥 삼켜버렸다. 웅냥냥 기분좋은 표정으로 홍중은 등을 휘어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은 꼭 한 마리 고양잇과 동물같았다. 개운한 탄성을 내뱉은 홍중이 반짝이는 눈을 떴다.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진, 혹은 그 전부를 초월한 신이라고 해석되는데. 글쎄 이게 유토피아의 옛말이라는 추측도 있대. 재미있지 않아? 통찰력있는 몇몇 사람들은 수백년 전부터 이미 세계의 이상향이 절대적인 선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게."
"...어려운데. 잠꼬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인걸. 너 안 자고 있었다는 건 믿어줄게."
"그런 거 인정받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키득키득 홍중이 웃는 진동에 잠이 깼는지 옆에 누워있던 민기가 칭얼대는 소리를 냈다. 한 시간 뒤에 무대라고? 홍중이 중얼거리며 민기의 어깨를 토닥이고 살살 흔들어 깨웠다. 그래, 준비해야지. 우리가 갈고 닦아온 반짝임을 보여줄 시간이잖아.
"난 우리가 사회에 메세지를 줄 수 있다고 믿어. 음악의 힘을 아니까."
"어려운 말 그만해도 돼."
"어쩌면 우리가 가장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
"우와, 장대한 계획인걸."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너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뻐. 성화야."
"응?"
방금 쟤가 뭐라고 한 거지? 성화가 동그랗게 토끼눈을 떴다. 저가 친구사이로 지내자고 막 치댈 때 동료라고 선을 긋던 뻣뻣한 녀석이 무슨 말을. 갑자기 오글거리게 왜 저러는 거야. 으으 작게 몸서리친 성화는 홍중의 곁을 떠나 다른 멤버들에게로 쏙 도망가버렸다. 홍중을 등지고 섰음에도 뒤통수가 근질거려 혼났다. 가슴 속은 간질간질, 심장은 두근두근.
도대체 왜. 저 말이 익숙하다 못해 반갑게 느껴지는 걸까?